계수나무 이야기/생각 나누기

[스크랩]책에 대한 좋은 글 나누고 싶어요.

계수나무 출판사 2013. 12. 1. 09:59

 

 

#1564호 - 책을 쥐면서 조금 더 지혜로워졌습니다.

오늘은 지난 글에 이은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힘들때, 혹은 스스로를 강건하게 만들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낄 때 하는 '운동'이야기였습니다. 오늘은 책 이야기입니다. 저는 보통의 한국사람들이 그렇듯이 제 잘난 맛에 삼십대 초반 대부분을 살았습니다. 아는게 없었지만, 아는게 없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상당히 용감했습니다. 일종의 무식한 용감인 셈인데, 체력이 뒷받침하는 관계로 '뭔가는 되겠지'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방향없이, 마음 속 확신없이 살아가는 하루 하루는 불안과 고통이었습니다. 그냥 하루에 충실하면 되겠지라는 마음에 안 맞는 일과 술도 가까이 했지만, 그럴수록 점점 진창속에 뒹구는 기분이었습니다. '가정을 먹여살린다'라는 명분 속에 내 인생은 하루 하루 망가져갔습니다. 이 모든 책임이 저한테 있다는 반성이 없었기 때문에 행동도 늦었습니다.  

그럴 때 제게 힘을 준 건 책입니다. 당시 제 주변의 인생 선배들은 지금 자기가 머무는 곳에서의 명분을 오직 '돈'으로만 측정하고 있었지만, 책은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가치들에 대해서 일깨워주었습니다. 회사에서 매출 계산서의 실적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할 때 저는 시공간을 초월한 작가들이 더 소중한 게 있다고, 더 넓은 세상을 보라고, 가장 본질적인 가치는 다른 것들로 인해 이뤄진다고 힘을 북돋아주었습니다.

지금도 크게 활동이 동적인 사람이 아니라 저는 멘토를 정기적으로 모시러 다니지 않습니다. 눈도 높아졌을 뿐더러, 어줍잖은 사회 유명인들이 사실 대부분 동전의 양면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걸 안 후부터는 신비감도 많이 줄었습니다. 자기 집 안에서부터 존경을 받기 시작해야 하고, 사회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아야 하는 사람은 되어야지 (멘토는 둘째치고) 친구격으로라도 좋겠다라고 생각하다보니 정말 더 쉽지 않습니다. (또 그런 친구들은 진짜 저 만날 시간없이 더 가치있는 일들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대부분의 영웅들은 사회적 규모의 일을 이룬 사람들로 추앙을 받지만 실상은 가족의 희생이나, 올바른 아빠, 존경받는 남편의 모습을 얻지 못했습니다. 실제 세상은 조용하고 평범한 민초들이 만들어가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모습이기도 하고요.

저는 지혜가 필요할 때 생명력이 있는 텍스트를 통해 많이 해결을 하려는 편입니다. 고전일수도 있고요, 아주 많은 실험, 깊은 자아성찰, 혹은 따뜻한 시선을 통해 만든 꽤 좋은 교양서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근본적인 내용부터(인문학이 주로 이런 분야입니다.) 교수법이나, 코칭질문, 심리학, 경제경영, 리더십 등 다양한 스킬을 배우는 것까지 책은 제가 직접 만나지 못한 수많은 각 분야의 고수를 만나게 해줍니다.

예를 들어 어려움이 있을 때 저는 제 집에서 그 분야를 해결해 줄 것 같은 섹션으로 걸어갑니다. 그리고 혼잣말 처럼 책들에게 중얼거립니다. "자, 이제 누가 나 좀 도와줄래?" 그러고 몇 권을 쓰윽 뺍니다. 정말 그 속에 제가 찾던 어떤 답들이 있습니다. 신기하죠? 이걸 경험해 보지 않은 분들은 이해하기 좀 어려운 설명입니다.

집에 약 4천 여권의 책이 있고 제 공부방에만 대략 한 칸에 30권씩 들어가는 서재가 68단 구성되어 있으니까 2천 권 좀 넘네요.(이사는 어떻게 가야할지 나름 걱정입니다. 뭐, 몇 만권 도서관 단위로 꾸며놓는 초고수들도 있으니까 어떻게 되겠지 하며 살지만요.) 어쨌거나 사람으로 치면 주변에 나름 중고수, 초고수 들이 항상 4천 명 정도 있는 셈입니다. 초호화 참모진입니다. 제가 할 일은 이런 고수들의 다양한 의견에 끊임없이 귀기울이고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 생각하는 일 아닐까요?

제가 곁에 둘 수 없는 책들은 다른 방법을 활용합니다. 빌려보는 거죠. 도서관 근처에서 사는게 항상 집을 옮길때의 중요한 관점 중 하나입니다. 근처의 도서관에 가서 관련분야 섹션이나, 최근 나온 책 구매한 코너 곁 책상에 자리를 잡고 물 한 통 가져다 놓으면 서너 시간은 지적 충만감과 (이런 걸 모르고 살았다는) 부끄러움에 후딱 잘도 지나갑니다.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몸 담고 있는 조직이 대여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서 꽤 많이 빌려 간독용으로도 활용합니다. 근 5년 동안 대여횟수를 최근에 우연히 봤는데 900권 좀 넘게 빌렸더군요. 일년당 그래도 산 것 빼고 180여권 정도는 비용을 아낀 셈입니다. 단 빌려보는 책은 가격의 장점이 있는 대신 내 곁에 계속 둘 수 없다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의 저자 시미즈 레이나도 대여의 이런 점을 안타까워합니다.
"책을 빌리는 것과 사는 것. 이 두가지는 전지의 N극과 S극만큼이나 다르다. 당연한 말이지만 빌린 책은 아무리 그 책이 좋다 한들 반드시 돌려주어야 하는 운명이지만, 산 책은 확실히 내 것으로 남는다. 그것도 영원히. 손을 뻗으면 좋아하는 책이 늘 곁에 있는 게 무엇보다 좋았던 나에게 그것은 결정적인 차이이자 동시에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책 읽다가 느낌 오는 책은 오히려 빨리 반납합니다. 급이 안 맞으면 안 어울리면 되고, 급이 너무 딱 맞는다 싶으면 구매해서 읽어야지 마킹이 가능하니까요. 오히려 오래 가지고 있는 책들이 판단이 잘 안서는 부류일 경우가 많습니다.)

시미즈 레이나의 이야기를 인용하다보니 또 다른 공간, 서점도 있군요. 신간의 화려함, 다양한 구매욕을 느끼는 공간은 서점입니다. 도서관이 좀 더 학술적이고 과거의 자료를 차곡차곡 모으고 있는 웅장한 세계라면 서점은 좀 더 대중적이고 최근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대중의 욕망도, 권력의 야망도, 현재의 반성도 치열하게 부딪히며 이뤄집니다. 저만 느끼는 건지 모르겠지만, 조명도 좀 더 전투적입니다. (이 느낌을 뭐라고 표현하기가 참...) 그래서 서점에 가면 일단 마음이 들뜹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뭐라도 할 수 있을 듯한 '기분'부터 먼저 듭니다. 책과 2차적으로 연관된 물품을 보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다양한 노트와 펜, 다이어리등도 이런 촉매제 역할을 합니다.

이런 서점에 작가라도 들러서 강연회를 하는 날이면 근사한 하드웨어에 개념 소프트웨어까지 맛볼 수 있는 운수좋은 날입니다. 글을 쓴 사람이 튀어나와 인간적인 면, 혹은 글을 쓴 뒷배경과 인간에 대한 철학을 들려주면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한 권의 책 서문을 든든히 챙긴 느낌입니다.

책을 다루는 공간 하나만 가지고 이야기해도 아마 한참을 여러분과 더 이야기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네요. 제 경험담이 여러분이 책을 읽는 시간을 방해하면 안되겠죠? 마무리하며 한 번 무작위성의 우연을 실험해 볼까요? 눈을 들어봅니다. 공지영씨의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다]가 눈에 띄였습니다. 집어듭니다. 그리고 한 페이지를 아무곳이나 폅니다. 169페이지입니다.  페이지 제목은 <하늘나라가 여기에> 입니다.

"피에르 신부님의 말씀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세 사람이 있는데 가장 힘센 자가 가장 힘없는 자를 착취하려 할 때 나머지 한 사람이 '네가 나를 죽이지 않고서는 이 힘없는 자를 아프게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할 때 하늘나라는 이미 이곳에 있다"

거봐요. 제가 뭐라고 했나요?
지금 저한테 필요한 딱 그 말이 나온다고 했죠?
여러분도 경험해 보시는 순간이 있으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