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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4·3’을 유년의 기억으로 직조하다

계수나무 출판사 2010. 4. 13. 09:51

'4·3’을 유년의 기억으로 직조하다
현길언 성장소설 '다들 어디로 갔을까'

 

 

제주출신 현길언(70)작가가 소년기의 삶과 생각과 기억을 한데 묶어 쓴 성장소설 '다들 어디로 갔을까'를 냈다. "초등학교 시절에 겪었던 삶의 체험과 기억의 아픔, 그 가운데서도 버릴 수 없었던 꿈을 여기에 모두 담았고 그런 의미에서 제일 사랑하는 작품"이라는 '작가의 글'이 실려 있다.

현 작가는 이미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제주 4·3사건, 6·25 전쟁까지 우리의 아픈 역사를 3부작 성장 소설 '전쟁놀이' '그때 나는 열한 살이었다' '못자국'에 담아내기도 했다.

이 책은 사라져 가는 우리 자연과 문화와 생활,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질곡의 역사를 폭넓게 그려내고 있다. 또 그 시대를 살았던 제주 사람에게는 아직도 응어리로 남아 있는 아픈 이야기를 어린 주인공의 눈을 따라서 가감 없이 끄집어내고 있다.

규명이는 부잣집에 태어나 콩이나 꽃씨가 자라는 것을 관찰 일지에 꼼꼼히 기록하고, 아끼던 닭을 죽인 족제비를 잡아 만든 붓으로 명심보감을 베껴 쓰면서 어렴풋이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간다. 이처럼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던 규명이는 하루아침에 아버지와 헤어지게 되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잃는다. 그 많던 가축을 다 빼앗기고 대가족이 해체되면서 어머니와 단둘이 남게 된다. 이렇게 만든 시대적 배경은 바로 4·3이다. 어린 규명이가 시련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어디에서 찾을까? 규명이는 고향마을로 돌아온다. 잡초가 무성한 옛 집터를 눈앞에 두고 슬픔에 짓눌려 있을 때 여전히 만발해 있는 꽃들을 보며 힘을 얻는다. 그것은 고향이 주는 힘이다. 험난한 길을 살아간 규명이를 기다리며 매 계절마다 피어난 꽃들을 비롯한 변하지 않는 자연이 주는 힘인 셈이다.

작가는 "이제 그러한 비극적인 시대는 다시 오지 않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피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변하지 않는 자연의 질서와 나를 새롭게 태어나도록 하는 그 어떤 힘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1980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작가는 현재 울란바토르 대학 석좌교수이자 한국학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계간 '본질과 현상'을 펴내고 있다. 작품 속에는 '장길산'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 만화가가 된 백성민(62)화백이 삽화를 그려 소설의 깊이를 더한다. 그는 '가장 한국적인 만화가'라는 수식에 어울리게 붓과 먹을 사용하여 역동적이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계수나무. 9800원.


이현숙 기자 hslee@hall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