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규명이가 바라본 그날 | ||||||||||||||||||||||||||||||||||||||
현길언 성장소설 「다들 어디로 갔을까」
2010년 04월 08일 (목) 22:32:23 고 미 기자
상처라는 말을 빼고 해방 이후 제주도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 시대를 살았던 제주사람들에게는 아직 응어리로 남아있는 아픈 이야기가 10살 규명이의 눈을 통해 그려진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제주4·3사건, 한국전쟁까지 우리의 아픈 역사를 3부작 성장소설(전쟁놀이·그때 나는 열한 살이었다·못자국)에 담아냈던 제주출신 소설가 현길언씨(70)5가 또 한편의 성장소설을 내놨다. 규명이네 집에는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까지 4대가 모여 산다. 말과 소, 닭, 개까지 규명이가 원하는 대로 친구가 되고 콩이며 꽃씨가 자라는 과정은 일기로 남는다. 그런 규명이는 아끼던 닭을 죽인 족제비를 잡아 만든 붓으로 명심보감을 베껴 쓰고, 내 것이 생기고 나서는 그것을 돌봐야 하는 책임감도 느끼게 된다. 어른들의 세상과 부딪히며 조금씩 자라나는 규명이는 어느 날부터 이상해진 마을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여름 내 정성으로 가꾼 화단이 폭풍에 망가지고, 누군가 교장선생님을 죽이는 일이 일어나고,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안전할 줄 알았던 마을이 폭도들의 습격을 받고 늘 옆에 있을거라 생각했던 가족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사라진다.
“우리가 뭐 잘 못한 일이 있어?” 안전할 줄 알았던 마을을 쫓기듯 떠나는 상황이 이해가 안되는 규명이다. 그렇게 할머니를 잃고 아끼던 누렁이도 곁을 떠난다. 폭도 우두머리로 몰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고문 끝에 돌아가신 일도 이해하기 어렵다. “아버지도 배를 타고 육지로 떠났나?” 그 질문에 어머니는 눈길을 거두고 입을 다물었다. 침묵을 깨는 것은 바위틈에서 바닷물이 내려가는 소리뿐이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강제로 사랑하는 것을 잃어야 했던 어린아이의 솔직한 심정이 담긴 말이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모를 일 투성이었던 그 때가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아이를 통해 본 제주 섬에 묻혀있던 아픈 기억이 보다 실감나게 다가오는 것은 붓으로 그려진 삽화도 한 몫했다. 붓으로만 작품활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만화가 백성민씨(62)가 모처럼 힘있는 그림체와 감정을 고스란히 반영한 명암담은 삽화로 글에 힘을 보탰다. 계수나무.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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