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이들에게 무슨 책을 읽어줄까.....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집배원 아저씨가 오셨습니다.
갓 나온 따끈따끈한 그림책 한 권을 가져다 주시네요.
오호, 나의 고민을 덜어준 고마운 아저씨.
뭔가 보랏빛으로 어두운 기운이 돌면서...살짝 어린이용 납량 특집같은 글자체가
수상합니다.
<소리 괴물>이라...일단, 괴물이라는 말에 아이들 귀가 솔깃합니다.
빨리 일어나 학교에 가야지...
길을 걸을 때는 앞을 똑바로 보고 걸어야지...
친구하고는 사이좋게 지내야지...
우리 친구들은 하루종일 말, 말, 말 속에서 살아갑니다.
물론,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도 사방에서 말 하는 이들만 많으니 어느새 사람들은 남의 말 따윈
듣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이 남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질 않으니 말들은 허공에 버려집니다.
이렇게 버려진 말들은 어떻게 될까요?
말...말...말...들이 하나로 뭉쳐져서 어느덧 괴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괴물은 어떤 강력한 폭탄에도 파괴되지 않으며
슈퍼맨, 배트맨 같은 지구영웅들이 나서도 없애질 못합니다.
소리괴물의 굉음에 지친 사람들은 제발 조용한 세상이 와서
서로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질 않으면 그 소리들이 허공에 버려져서 괴물이 된다는 게
아이들은 신기했나 봅니다.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에게 맘껏 소리를 질러보라 했는데...막상 떠들어보라고 하니
아이들이 퍽이나 조용합니다.ㅎㅎㅎ...
책읽기를 마치고 우리들은 색도화지에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실컷 써보았습니다.
평소 엄마가 자주 하는 말, 그러나 듣기 싫은 말,
내 맘속에 화가 났을 때 하는 말, 친구에게 서운했던 말 들을 모두 써보고
둘러앉아 그 색도화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립니다.
내 맘속에서 서운했던 말들도 지워버리면서요...
찢어진 종이조각들을 한데 모아 딱풀로 찢어붙이기를 해서
소리괴물을 만들어 봅니다.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조금은 풀렸을까요?
내가 잘 듣지 않아 버려진 말들이 소리괴물로 변해 우리를 위협하기 전에...
남의 말을 귀담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 같은 걸 가졌을까요?
굳이 그런 말을 아이들에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구요?
정작 이 그림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우리, 어른들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쳐다보고 앉아서 상대의 말은 듣지 않은 채
각자 자기 할 말만 하고 있는 어른들의 하나인 내가,
아이들에게 이 그림책을 읽어주다 보니 조금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만들어낸 소리괴물 때문에,
사랑하는 엄마, 아빠, 형제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게 된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했기 때문입니다.
반성한다는 뜻으로 아이들이 찢어붙여 만든 소리괴물을 다락방 도서관 벽에
잘 붙여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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