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수나무 이야기/생각 나누기

<기사>깊이있는 책은 기피? 천만에! ‘묵직해진’ 베스트셀러

계수나무 출판사 2010. 11. 25. 16:55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 인문서·성찰 담은 책이 상위권
“베스트셀러가 두툼해졌다. 내용적으론 무겁고 진지해졌다.”

주요 서점 관계자들이 올가을 베스트셀러 경향이 기존과 크게 달라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예년엔 찬바람이 불면 독자들이 문학책을 많이 찾았는데 올해는 인문·경제경영 분야에 대한 인기가 두드러진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자는 “일반적으로 베스트셀러는 20, 30대 여성의 구매가 가장 많은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는데, 20~40대 남성 독자들의 지지를 받은 책이 이례적으로 상위권에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보문고 11월(1~14일) 집계에서 1위를 차지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남성 독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쓴 이 책은 대중 경제서를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 내용은 세계 경제체제의 허실을 짚은 것으로 진지한 사유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에 대해 출판계는 “저자의 세계적인 명성과 더불어 당대 사회 구조의 문제점을 성찰함으로써 미래 비전을 찾아보려는 독자들의 욕구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들이…’의 인기에 힘입어 장 교수가 2008년에 출간한 ‘나쁜 사마리아인들’도 다시 20위권에 진입했다.

이는 올해 초부터 우리 사회 전체에 거세게 불었던 ‘도덕, 공정 사회’ 열풍과 맞닿아 있다. 지난 5월에 번역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그의 신간 ‘왜 도덕인가’가 나란히 상위권에 랭크돼 있는 것은 공동체의 선(善)에 대한 관심을 뚜렷이 나타낸다.

한국 문학책으로 유일하게 톱5 내에 들어간 조정래 작가의 ‘허수아비춤’ 역시 베스트셀러 소설에 흔한 연애담이 아니라 공동체의 정의를 지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사회에 숨어 있는 진실을 알고 그것을 개선해 보고자 하는 독자들의 욕구가 수많은 걸작을 써 온 국내 대표적 작가인 저자에 대한 신뢰와 겹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9월 중순 출간 이후 줄곧 상위권에 올라 있는 법륜 스님의 ‘스님의 주례사’는 행복한 연애와 결혼을 꿈꾸는 남녀에게 주는 조언을 묶은 것으로, 가벼운 덕담처럼 보이지만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일본 스님인 코이케 류노스케의 ‘생각 버리기 연습’도 사회적 관계에서 파생하는 번뇌를 벗어던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여성 독자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던 작가들(파울로 코엘료, 에쿠니 가오리, 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문학작품도 여전히 상위권에 기록돼 있으나, 인문·경제경영서가 예년에 비해 뚜렷하게 많이 보인다는 것이 올해의 특징이다.

이와 관련,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현 한국 사회에 비전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구성원들 스스로 길을 찾아보려는 ‘자기 구원’의 경향이 독서에 반영되고 있다”며 “우리가 몸을 담고 있는 사회 구조의 근본에 대한 질문을 하는 책들이 올해 들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출판사가 독자의 욕구를 포착해 기획한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처럼 우리 출판계가 공동체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는 기획서들을 앞으로 더 많이 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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