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대에는 자기계발서가 상한가를 쳤다.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이후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평생고용 구조가 무너지면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던 대중은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강박관념)과 어떻게든 남보다 앞서야겠다는 오기가 작동해 남이 모르는 비책을 알려준다는 자기계발서를 서둘러 찾았다.
하지만 자기계발서는 항우울증 치료제처럼 아픔을 잠시 이겨내게 할 수는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처방은 되지 못했다. 승자독식의 구조에서 고용자가 노동유연화를 위해 적극 활용한 측면도 없지 않아 성찰 없이 자기계발서를 읽는 사람일수록 삶이 비참해지는 역설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2008년 가을의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자기계발서는 급전직하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비싼 선인세를 주고 자기계발서를 경쟁적으로 들여오다 직격탄을 맞은 출판사들 가운데 일부가 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으로 여겨지는 스토리텔링의 근원 시장인 소설로 항로를 바꾸려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국내 문학시장은 조악하기 그지없다. 몇몇 인기 작가를 제외하고는 초판 3000부를 팔기도 어렵다. 문학, 나아가 인문학이 통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지 않고 팔리는 책만 곶감 빼먹듯 빼먹은 결과라 할 것이다.
다행히 민음사가 독주하다시피 하던 세계문학전집 시장에 여러 출판사들이 뛰어들어 춘추전국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문학동네가 작년 연말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시작하며 20권을 1차로 펴낸 데 이어 시공사도 올해 ‘시공 문학의 숲’ 1차분을 내놓는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가 230권을 넘어선 민음사는 젊은 세대 독자를 겨냥해 ‘모던클래식’ 시리즈를 펴내기 시작했다.
창비는 세계의 단편 걸작들을 정선해 나라별로 한 권씩 묶은 ‘창비세계문학’ 전9권을 최근 내놓았다.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과 책세상의 ‘책세상문고 세계문학’도 권수를 늘려가고 있어 다양한 고전문학작품을 개발하려는 경쟁체제가 확립돼가고 있다.
아울러 인문적 지식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인문교양 문고 시리즈도 늘어나고 있다. ‘책세상 우리시대’와 ‘살림 지식총서’가 꾸준히 권수를 늘려가는 가운데 인문학의 기본개념들을 한 권의 책을 통해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그린비의 ‘WHAT’ 시리즈, 한국문화를 키워드별로 압축해서 설명하는 문학동네의 ‘키워드 한국문화’, 철학과 역사, 경제 등의 기본 분야를 주제별로 간략하게 정리하는 민음사의 ‘민음 지식의 정원’ 등이 최근 선보였다.
이런 노력들이 더욱 늘어나 인문학의 모든 분야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된다면 출판시장은 다소 숨통이 트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 한구석을 짓누르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왜 한국문학에는 여전히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인가?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계수나무 이야기 > 생각 나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와! 신기한 사탕이다 서평 (0) | 2010.03.12 |
---|---|
아홉 가지 몸가짐 (0) | 2010.02.19 |
2009 볼로냐 국제 그림책 원화전 (0) | 2010.01.06 |
2010 출판계 전망 (0) | 2010.01.05 |
새날에 바랍니다. (0) | 2010.01.01 |